
90년대 초에 태어난 나는, 새학년 새학기 초 항상 듣는 말이 있었다.
선생님들은 너네는 몇 년 생이니? 라고 물으셨고, 우리가 대답하면, 높은 확률로-
"그럼 88올림픽은 못봤겠네?"
도대체 88올림픽이 뭐길래, 저렇게 기준점으로 얘기하시는 걸까. (이후에 2002년 월드컵을 나름 경험하긴 했지만,그것과는 결이 다른 것 같은데.)
88서울올림픽의 중요성을 다시 인식한 건, 서울에 대한 자료를 찾아다니면서부터다.
하나는, 88올림픽을 준비하면서 엄청나게 많은 개발사업들이 진행되었고, 도시에 아주 큰 변화를 가져왔다는 것.
다른 하나는, 그렇게 큰 변화를 가져왔던 메가이벤트이기에, 88을 준비하면서-진행하면서 생산된 기록이 많다는 것.
올림픽을 실시간으로 경험한 세대는 아니지만, 도시덕후로써 서울을, 도시를 파다보면 만날 수밖에 없는 올림픽의 영향. 공식적인 계획의 기록 외에도 수많은 부산물같은 기록들. 이 올림픽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참여했고, 동원되었고,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쳤는지를.
올림픽의 영향은 연역적으로 들어 알고 있었지만,
귀납적으로 체감했던 것이다.
거기에 2020-2021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전시 올림픽이펙트:한국 건축과 디자인8090은 올림픽의 영향을 다시 바라보게 된 계기 중 하나였다. 서울스테이지라는 팀의 일원으로 이 전시에 참여하면서, 올림픽 전후 제작된 여러 계획들, 보고서들, 자료들을 한층 더 깊이 살피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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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초, AURIC 학술지 메일링을 통해 우연히 본 논문, 88서울올림픽 마라톤 코스의 결정 과정과 도시 경관 이미지 전략(박상연·전봉희, 2020)은 충격적으로 재밌었다. 아니, 올림픽에서 마라톤을 이렇게 연결해서 본다고…? 이 아이디어와 분석이 너무 재밌어서, 트위터에서도 소개했었다. 학위과정을 할 때도 아니었고, 달리기 자체에 대한 관심(tmi. 2019년 가을에 하프마라톤을 처음 뛰었다)과 서울에 대한 관심, 올림픽의 영향에 대해 느꼈던 것들, 이게 만나는 논문이라 강렬하게 머릿속에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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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가을 미국 동부로 아카이브 여행을 갔다. (관련 블로그 포스트- http://cityscape360.kr/11 http://cityscape360.kr/13 등) 처음에 미국의회도서관은 NARA보다 방문 일정 비중이 적었던 곳이다. 크다고는 하지만 너무 크니까 어떻게 타겟 해야할지 모르겠고, 큰 관이 두 개 라는데, 하나씩 슥슥 둘러보고 와야겠다- 하고 갔던 곳에 신세계가 있었다. 사전 정보가 많이 없어서 몰랐던거지, 지리지도부 Geography and Map Division는 엄청난 곳이었다. 리딩룸을 예약했더니 관심 지역이 어디인지, 타임프레임은 어디인지 물어왔고, 서울과 근현대 지도라는 뭉뚱그린 답에, 담당 사서는 연대별로 아이템을 준비해주었다.


일반지도를 보다가, 사서와의 대화 중 우연히 관광지도, 지하철지도 등을 더 열람하겠냐는 제안을 받았고, 그렇게 나는 하루 종일 지도실에서, 그 다음날까지 열람실에서 (미친사람처럼) 지도를 보았다. 그때 나는 완전히 흥분 상태였다. 나름 꽤 오랜 시간 지도를 보고, 수집하면서 서울지도는 꽤 많이 보았다고 생각했는데, 여기에서 처음 보는 지도가 너무 많았다. LOC에 소장된 서울 지도가 그렇게 많은지 몰랐던 상태라 더 그랬다.
관광지도를 보기 시작했을 땐, 원래도 관광지도에 관심이 있긴 했지만-(나는 명동에있는 관광정보센터에서 주기적으로 서울관광지도를 가져오던 사람이다..) 관광지도가 이렇게 많을지 몰랐다. 게다가 일반도에 대한 잔상이 남아있는 상태에서, 시간에 쫓기며 빠르게 관광지도를 넘기다 보니 두 가지가 크게 눈에 들어왔다. 상세도의 변화(이름, 영역, 배치)와 3D 입체로 그려진 건물들. 경복궁이나 공원같은 관광지 말고, 이상하리만치 많은 업무용 건물들. 이상하다. 이 변화들은 뭘까 궁금했지만, 궁금함과 찍어둔 사진들을 안고 서울로 돌아왔다.
건축학과 석사를 진학하면서, 논문은 꼭 "지도"로 쓰고 싶었다. 어떤 지도, 어떤 시기를 중심으로 할 지, 진학 당시, 첫 해만 해도 구체적으로 잡히지는 않았다. 그러다가 2025년 1학기, 연구계획서를 잡는 과정에서, 수집해둔 지도를 이렇게 저렇게 보다가, 2020년 보았던 마라톤 코스 논문이 머리를 스쳤다. 아, 올림픽이다. 관광지도로 집중해서, 올림픽 전후를 봐 보자. 관광지도에 어떻게 올림픽 서울을 보여주고 싶었는지를 찾아보자.
이후 부제는 조금씩 달라졌지만,
그렇게 "편집된 서울의 얼굴"이라는 제목과, 올림픽 전후 시기 관광지도의 활용은 2025년 5월 정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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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기본적인 지도의 목록화, 촬영해 온 지도 이미지 보정과 지오레퍼런싱, POI 추출작업 등 기초작업에 상당한 시간이 들어갔다. 지루하기도 했지만, 실물을 열람하며 받은 '감각'과 '인상'을 '정보화'하는 과정이자, 세부 질문과 내용을 만드는 중요한 작업이었다. 이 과정에서 지도교수님의 도움이 컸다. 지도 자료의 구조를 어떻게 만들 것인지, 느낌을 어떻게 정량적으로 논증할 수 있는 형태로 바꿀 것인지. 그 뼈대가 있었기에 이후 분석이 가능했다.
디지털 정보로 만들고 나니 분석할 수 있는 것들이 구체화되었고, 새로운 질문들이 생겨났다. '느낌적인 느낌'의 상세도 변화는, 지도별 정보를 목록화하면서 1981년 이라는 분기점을 도출할 수 있었다. 막연히 88올림픽 전후 분석 범위에서, 1981년을 기준으로 한 시기1/2의 구분은 데이터를 정량화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이다. 88이라는 이벤트 전후가 아니라, 88준비가 확정된 81년이 기준이라는 것을. 여기에서 도시재현이, 서울의 보여주기의 분기를 포착할 수 있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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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에는 재현되지 않은 것, 감추고 싶었던 것도 찾아서 분석하고 싶었다. 하지만 욕심을 버리고 재현된것을 어떻게 포착하고 해석할지에 더 집중했다. 상세도 지오레퍼런싱도, POI추출도 그 과정에서 진행되었다. 단순히 겹쳐보기보다, GIS시스템 안에서 겹쳐보는 것, 건물 이미지 재현의 인상에서 하나의 좌표정보로 추출하고, 분류하며, 정보를 연결하는 과정에서 분석할 수 있는 것이 넓어진다.
연구자료의 특성상, 짧았던 수집 과정 이후 실제 연구 과정에서 실물 지도를 넘겨보며 연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대신 태블릿에서 지도 이미지를 브라우징하며, 정량화된 데이터 베이스사이를 오가며 해석의 층위를 어떻게 넓힐 수 있을지 고민했다. 사실 '강남이 부각되었다', '도심은 공고한 중심이었다', 이것까지는, 질문-자료-해석이 의미가 없지는 않지만, 이 자료만이 보여줄 수 있는 한 겹이 뭐가 더 있을까를 찾고 싶었다. 여기 저기 한 겹을 더 들춰보다, '선점적 재현'(아직 지어지지 않은 건물을 그려둔)이나 '안내하기 vs 보여주기' 같은 이야기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관광지도가 서울을 얼마나 보여주고 싶어 한 매체였는지, 어떤 식으로 보여주기를 하는지를 찾는 과정에서 나온 것들이다.
'안내하기 vs. 보여주기'에 활용된 "목록"이라는 지도의 요소는, POI를 보다 보니 눈에 들어왔다. 처음 관광지도를 볼 때 느꼈던 그 이상한 느낌, 이 업무빌딩들은 왜이리 많지, 거기로 다시 돌아와서 지도의 다른 요소들을 훑으니, 목록이 다시 보였다.
"편집된 서울의 얼굴"이라는 제목의 '편집'은 논문 초기에는 인상으로써 들어갔지만, 논문을 쓰는 과정에서, 인쇄매체의 조건속에서 '편집'의 흔적으로 깊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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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석사논문과 학술지논문 두 개의 논문을 쓰는 과정에서 반복했던 질문과 관심은
서울의 편집과 재현이다. 그리고 아마도, 앞으로도 이 방향에서 자료를 찾고, 질문을 만들어 나갈 것 같다.
논문링크: https://www.riss.kr/link?id=T173693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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