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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강홍빈, 충신효제: '사이'의 동네 / 2026.03.13. @도시상담

cityscape 2026. 3. 29. 18:13

2026년 책방 도시상담에서 진행되는 강홍빈 선생님의 동네 특강은 총 4강으로 진행된다. 

지난번 동숭동, 이번 충신, 효제동, 5월 예정된 연지동, 7월 예정된 명륜,혜화동. 모두 대학천변 동네들이다. 오래된 사대문안 도심의 동네들이기에, 하나하나 면적은 크지 않지만, 시대의 변화속에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는 곳들. 그리고 그곳을 주민이자, 학생이자, 연구자이자, 행정가이자, 박물관의 수장으로 경험하고 공부했던 강홍빈 선생님의 시선에서 듣는 시간.

1월 동숭동 특강에 이어서 이번에 공부한 동네는 종로구 충신동, 효제동이다.
강연의 구성과 진행은 동숭동과 비슷했다. 선생님의 개인적인 경험과 시선에서 시작한 충신동, 효제동의 내러티브,
사진과 지도, 그림으로만 구성된, 'PPT디자인'이라 불리는 디자인은 없지만 치밀하게 내러티브가 디자인된 슬라이드의 구성. 

타이틀은 "충신.효제: '사이'의 동네
강연은 크게 3개 파트로 이뤄졌다.

Part1. 기억의 동네
Part2. 재봉틀 도는 도시
Part3. 전환의 문턱

 

파트1, 제목처럼 선생님의 기억 충신/효제에서 시작되었다.

아버님이 근처에서 일하시게 되면서 가게 동네. 유년기 10 정도를 거주하셨다고 한다. 하천가(대학천) 있던 2층의 적산가옥이었는데, 하천을 향해 자리잡고 있어서 홍수가 나면 돼지가 떠내려오는걸 목격한 적도 있었다고 하셨다.

 

하지만 효제동은 원래 주거지가 아니었다. 19세기 말까지 효제동 일대는 배추밭이 있던 곳이다. 왕실의 별서, 별장들 사이에 있던 .

그런 효제동에 19세기 -20세기 초반에 대격변이 일어나는데, 변화는 동쪽에서부터-선교기지가 자리잡으면서부터 시작된다. 선교사들 주택, 기독교 학교들이 하나 자리하게 것이다.

거기에 1907년에 효제초등학교를 시작으로, 북쪽으로는 서울공대의 전신이 되는 공업학교, 1924 경성제국대학교의 설립 등등 교육기관의 설립이 이어졌다.

지도에서 보이는 것처럼, 충신,효제동이 여러 교육기관의 배후지로 성장하면서, 1920-1930년대 한옥주거지가 개발된다.

이때 개발에는 내로라하는 사람들이 디벨로퍼로 활동했고, 중에는 건양사의 정세권도 있었다.

1940년대 들어 충신.효제동은 교육중심지에 있는 중산층주거지로 많은 문인들과 교육자들이 활동하는 공간이 된다.

월탄 박종화의 별장(월탄장 혹은 만취장이라고 불렸던) 원래 충신동에 있었는데, 그곳이 많은 문인들, 예술인들의 사랑방이었다.

구본웅과 이상이 같이 살았던 역시 예술가들의 사랑방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해방 이후 충신동은 사회적, 공간적으로 균열을 맞이하게 된다.

동대문시장은 자연발생적 시장이었는데, 충신동 남쪽으로는 동대문시장의 영향권이 되고, 충신동 북쪽으로는 서울대학교 영향권이 되면서 충신동이 사이에서 혼종의 공간이 것이다.

사람들이 점점 밀려 들어오면서, 충신동 한옥 주거지는 조밀해졌고, 충신동 윗동네로는 판잣집이 들어서게 된다.

 

박완서 작가도, 1953-1960년대 초반에 충신동에 살았다고 한다. 효제국민학교( 효제초)뒤에 국정교과서 건물이 있었고, 월간 현대문학이 있었던 역할을 했었다고. 월간 현대문학은 여러 문필가들의 참여 뿐만 아니라, 표지의 작화 라인업도 화려했다. 박수근, 천경자, 이중섭, 장욱진 등등..
(
찾아보니, 박완서 작가는 "현대문학은 간판만 보고도 축복이었다" 인터뷰에서 언급한 적이 있었다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04/10/20/2004102070389.html)


Part2. 재봉틀 도는 동네

 

번째 파트에서는 충신효제동의 주거지가 산업공간으로 바뀌는 장면의 이야기들로 진행되었다.

국가 권력이 바뀌고, 동대문의 이정재 체제(?) 무너지고, 평화시장 상인들이 주식회사를 만들고, 청계천 복개사업이 진행되면서 건물을 짓게되는(과거는 판자촌에서 자연발생) 상황.

그리고 이촌향도로 서울에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몰려들었다. 동대문시장, 평화시장엔 이주해온 노동자들이 주로 일했고, 이들은 근거리 판자촌에 주로 거주했다.

 

전태일 열사의 분신 이후, 행정은 청계천의 열악한 노동시설들을 감독, 단속하게 된다. 청계천변을 따라 있던 공장들이 충신동으로, 효제동으로, 창신동으로 이전하게 된다. 그리고 대학천이 복개되면서 동대문시장과의 연결성이 강화된다.

이화동-동대문 구간에 율곡로의 건설(1978) 파괴적이었다. 길을 내기 위해 동네를 잘라낸 사업이었다. 여기엔 앞서 이야기했던 월탄 박종화의 집도 포함되었고, 그의 집은 그대로 평창동으로 이전하게 되었다.
(
박종화의 관련 정보: https://www.nculture.org/lib/libraryDetail.do?contentId=24769)


이런
과정 속에서 충신,효제동은 점차 재봉틀 도는 동네로 변화하게 된다.

동대문종합시장이 추가로 생기고(원단 기능 강함), 동대문 터미널이 있어 전국으로 유통망이 연결되며 평화시장일대가 황금기를 맞이한 것이다. 생산 기지도 주변으로 확장되면서, 충신 효제에는 평화시장을 뒷받침하는 산업기지화가 진행되고, 거기에 1975년에 서울대가 이전하면서 서울대 배후지 성격이 완전히 잃어버리게 된다. 앞서 남쪽으로 동대문시장, 북쪽으로 서울대의 영향을 받는 혼종의 성격이 바뀌는 것이다.

 

5공이 들어오고, 70년대 후반 강남개발이 본격화되고, 80년대 올림픽 준비를 하면서 강북에도 역시 합동재개발 방식의 재개발이 진행된다.

기존에 거주하던 충신동 주민들이 빠져나가고, 80-90년대 다세대, 다가구 건립이 증가하게 된다.

5공은 대중문화를 붐업 하려고 했던 정권이었고, 흐름 속에서 처음으로 패션잡지가 발행되고, 청바지가 대중화되고, 학생들에게는 교복자율화, 두발자유화 조치가 시행되는 흐름을 짚어주셨다.

 

그리고 소개해주신 1983.11.26 박완서 작가의 동아일보 칼럼. 개의 평화시장.
서울에서 평화시장을 가장 좋아한다는 작가. 평화시장에서 느끼는 즐거움 한편에 허전함을 느낀 이야기.

 낮은 임금이 지탱했던 봉제산업, 가발산업. 낮은 임금은 낮은 주거비가 지탱하고, 낮은 주거비는 달동네가 있어서 가능했던, "달동네에 빚지고 있다" 이야기. 그리고 이어 보여주신 손장섭 화백의 그림 - 달동네에서 아파트로. 화면에 띄워진 그림을 보면서, 몰랐던 세계를 이렇게 횡단하며 배울 있구나, 싶어서 감사했다.

손장섭, 달동네에서   아파트로


이어서 김영삼 정부가 주창한 "세계화"

그와 관련된 법안 하나 유통산업발전법이라고 한다. , 제도, 정치, 사회변화를 필요한 시점에서 짚어주시는 점이 선생님 특강의 포인트 하나다. 도시, 건축 연구를 하다보면 직접적인 /제도는 체크하긴 하지만 넓은 범위의 사회변화를 추동한 제도들은 놓치기 쉬운데 이렇게 배운 아젠다-법은 이후에도 공부하는 자산이 된다.

 

유통산업의 변화속에서 동대문일대는 새로운 쇼핑문화가 자리잡게 되고, 평화시장은 도매기능으로 가게 된다. 국경개방으로 중국, 러시아의 보따리상들이 동대문에 유입되면서, 생산량이 늘어나고 의류생산기지는 점차 동대문밖, 서울밖, 한국 밖으로 이동하게 된다. 대량생산은 한국보다 저임금인 외국의 노동시장에서 생산하고, 신속하게 제작하는 부분은 동대문의 고도의 기술력으로 빠르게 대응할 있는, 동대문 주변의 생산환경에서 이뤄지게 된다.

그리고 패션타운의 생산-유통 기능을 연결해주는 중요한 요소가 바로 오토바이이고.

생산기지가 이동하는 과정에서 충신 윗동네는 더욱 낙후되게 된다.

 

이런 변화속에서 행정의 대응 (강홍빈 선생님이 서울시에 있던 시절)으로,

2000 서울도심부관리 기본계획, 김광중 교수가 책임연구자로 진행했던, 의미있는 계획이라고 생각하신다는 계획보고서를 소개하셨다.

IMF 지나던 시기, 도심 제조업이라는 남아있는 자체가 너무 고마웠다고. 재개발이 능사가 아니라 도심제조업, 그들을 위한 주거, 이런 것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진행했던 계획. 서울형 산업이라는걸 정의하고,, 지원하는 방안도 궁리하고.

 

그리고 이어진, 콩국수집에서 만난 시정철학의 위트와 무게.

시청 근처 유명한 콩국수 집에 붙어있는 -현직 서울시장들의 코멘트 속에 담겨 있는 시정철학 (곳곳에서 웃음이 터졌던 슬라이드다),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도시와 연결되는지를 보여주는 다음 슬라이드.

2004 이명박 시정의 도심부 '발전'계획. 2000년과 같이 김광중 교수가 책임연구를 맡았다. 이 계획 보고서엔 서두에 굉장히 장황하게, 왜 도심부관리에서 발전이 되어야 했는지를 설명하는데, 읽다보면 그 의도가 대략 짐작된다. (참고로, 서울도서관에서 2000년 기본계획은 도집만, 2004년 발전계획은 원문 열람이 가능하다.)

그리고 박원순 시정의 2015 역사도심기본계획,

오세훈 시정의 2023 서울도심기본계획.

보고서가 나란히 배치된 슬라이드에서 서울시정이 갖는 도심에 대한 관점, 계획상, 시의 자기서사를 읽을 있었다.

 

2004 도심부 발전계획은 청계천 복원사업을 하면서 개발의 에너지를 청계천따라 만들어가려고 했었던 보고서라고 한다. 이어서 이명박-오세훈-박원순 시장의 중점사업들이 나오고.

사이에 소개해주신 공간이 있었는데, 창신동에서 2023년까지 운영되었던 이음피움역사관이다. 봉제 노동자들을 기리는 의미있는 공간이었다고 생각하는데, 방문객 저조를 명분으로 종료시켰지만 사실은 전임 시정에 대한 지우기 아니겠느냐는.

 

그리고 이전에 해제되었던 개발들이 다시 진행되는 틈에

효제1,2,4구역 역시 도시정비형개발이 2024.12. 정비계획이 세워졌고. 여러 개발이 진행되는 중인 충신, 효제동이다.


서울시정의 변화속에서

오늘의 충신,효제를 보면, 율곡로가 동네를 잘라낸게 크면서도, 여전히 선생님은 덩어리, 동네로 보신다.

(율곡로 개통 이후에 동네를 인식하고, 바라보고, 경험한 사람들(나를 포함해서)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배경일 것이다.)

하지만 율곡로 개통 이후에는 이전에 충신동 ,북이 아니라 율곡로 ,서로 동네가 나뉘어버렸고, 율곡로 동쪽이 더욱 낙후되게 되는 결과가 생겼다.

율곡로가 자른 단면의 모습들. 사이에 서울방앗간-디자인문현이 나란히 있는 사진. 방앗간이 있다는 나이든 주민들이 있다는 . 디자인 문현이라는 공간은 젊은 세대 디자이너일 것이고.

그리고 여전히 사이사이 남아있는 도시한옥들이 있다. 하지만 이제는 주거보다는 원단가게 등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율곡로 아랫동네는 섞여있고 살아있는 반면, 윗동네는 연결이 안되고 어려운 상황, 그래서 공장의 경우 아래는 재단 공간이 필요한 공장, 위에는 작은 공장, 마감 공장들이 간단히 입지하는 대비로 이어지고.

 

이런 현재의 상황속에서, 마무리하는 '사이' 동네.

앞서 이야기들을 망라하며 또 펼쳐지는 '사이'. 이 슬라이드가 나왔을때 정말 감탄했다.

태생부터 '사이'에서 자라난 동네

대학로,

주민-외래관광객,

-,

값과 삶은 투기의 문제만은 아니고, 건설, 금융, 부재지주. ….

 

그리고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사이' 가지.

하나는 Zone of transition, 전이지대와

다른 하나는 Ecotone, 추이대라고 번역되는 사이.

사이를 어떻게 보느냐

사이를 보는 가지의 관점.

두 가지의 사이. Zone of Transition과 Ecotone.

충신동은 버제스가 전형적인 전이지대라고 있지만,

동시에, 보기에 따라서는 ecotone으로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관점.

생태학적 개념인 추이대는 생태계의 시스템이 접하는 곳을 말한다. 수상과 육상, 삼림과 평야. 겹쳐있는 지역에 종다양성이 높음.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곳에서 다양한 어종이 잡히는 것과도 같은걸까?)

추이대에서 진화적 현실을 만들어 내기도 하고. 상충하는 가치, 질서에 대한 포용성, 공존의 가능성, 긴장감을 만들어낼 있다고.

강홍빈 선생님은 여러모로 다양성을 중요하게 보신다. 이번 특강에서 뿐만 아니라, 첫번째 특강에서부터 일관되게 강조하시는 부분. 선생님의 내러티브에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 하나가 다양성과 포용이니까.

 

그런 의미의 사이, 라면 재개발이 아니라 보호해야할 대상일 있지 않을까.

버제스식의 해석을 있다고 보면서도,

에코톤이 만들어내는 세계로 있지 않을까. 하는 마무리.

 

-

여러 질문들에 대한 답변과 마무리 갈무리를 하자면,

도시계획는 하지 말아야한다는 입장에는 반대하셨다. 노화라는게 자연스럽긴 하지만 시간에 맡겨둘수만은 없다고.

건축적 해결 가능성에 대해서는, 조금 있을 같으면서도, 관찰자로는 이렇게 저렇게 얘기하면서도, 현장에 있다면 괴로울 같다는 답을 하셨다. 하지만 양극단만은 피하고 싶다고. 여러 갈등요소가 있다는 자체가 생태계에는 긍정적인 조건 아닌가하는 덧붙임과 함께.


선생님의 특강은 도시의 역사와 변화를 공부하는 시간이면서,

동시에 어떻게 도시의 이야기를 말할 있는가, 도시와 서사에 대해 생각하고 공부하게 되는 시간이기도 하다.

흩어져서 알고 있던 사실들, 도시인으로 살면서 보고 느끼는 관찰들, 사회적 아젠다와 제도, 문학과 예술 등이 여러 갈래로 교차하며 동네의 이야기로, 사람의 이야기로 다가오는 경험.

 


알아보기 (링크)

역사박물관의 관련 보고서

- 2019 서울생활문화자료조사 연지, 효제  https://museum.seoul.go.kr/www/board/NR_boardView.do?colExt8_1=&q_bookCate=&colExt8_3=&actionMethod=&colExt8_4=&actionUri=&bbsCd=1012&seq=20200610161900106

- 2011 서울생활문화자료조사 동대문시장 (불이 꺼지지 않는 패션 아이콘) https://museum.seoul.go.kr/www/board/NR_boardView.do?colExt8_1=1634&q_bookCate=AA&colExt8_3=&actionMethod=&sortName=&searchVal=&colExt8_4=&actionUri=&bbsCd=1012&seq=000000000000213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