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서울, 나의 뉴욕
나는 서울 도심 가까이에서 나고 자랐다. 큰 길 하나만 건너면 사대문안인.
내가 생각하는 서울의 매력 -오랜 역사와 성장하는 현대의 모습-을 익숙한 풍경으로 둔, 서울의 네이티브로 자랐다. 그러니까, 애써 여기저기 탐험하고 배울 필요 없이(스스로의 학습 욕구로 다니는 것 말고), 서울의 구조와 풍경을 자연스럽게 가지고 성장했다. 이 도시는 의심할 필요 없는 나의 도시였다.
서울이 나에게 자연스러운 도시일 수 있었던 것과 달리,
엄마의 서울은 그렇지 않았다.
지방의 작은 도시에서 태어난 엄마는 일찍이 혈혈단신 상경했다. 엄마는 아직도 처음 명동 거리 풍경을 마주했을 때를 생생하게 말한다. 이게 무슨 별천지인지, 세상에 이게 서울이구나, 나는 여기서 배우고, 벌고, 돌아가지 않을거라고.
엄마는 서울이 급격하게 발전하는 시기 한복판에 있었다.
하루가 다르게 올라가는 건물들, 차가 빠르게 지나가는 고가도로들, 하나씩 늘어나는 지하철 노선들.
서울 어디에서 어디로 어떻게 연결되는지, 엄마는 몸으로 익혔다.
나는 엄마의 서울 세계관을 선물받았다.
어린 시절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기억은, 세 자매가 엄마 손을 잡고 주말 덕수궁에 갔던 기억이다. 하성호 지휘자가 이끄는 서울팝스오케스트라 공연이 주기적으로 있었는데, 이 공연의 팬이었던 엄마를 따라 돌담길을 걸었고, 무슨 음악인지도 모르면서 덕수궁을 뛰어다니며 그곳에 있었다.
좀 더 커서는 언니를 따라 사직동 어린이도서관과 종로도서관을 다녔고,
광화문 교보문고와 명동거리를 초등학교 4-5학년 쯤부터 혼자 (혹은 단짝친구와) 다니기 시작했다.
서울 도심의 주요가로와 거점들, 사이사이 공간들을 나는 걸으며 연결하고 익혔다. 엄마가 준 서울 세계관에 하나씩 확장해 가면서, 나의 서울은 커지고 단단해졌다. 답사프로그램을 찾아다니고, 대학에서 서울학을 만나고, 그러면서 과거와 현재를 잇는 서울에 대한 관심을 키웠다. 사이사이 엄마에게 서울을 물었고, 과거의 자료만으로 알 수 없는 것들을 엄마의 이야기를 통해 이해하는 순간들도 많았다. 도시-서울을 대상으로 일을 시작하고, (한참 나중엔 공부도 하고) 서울은 나의 홈그라운드이자, 탐구의 대상이자, 사람들과-세상과 연결되는 도시가 되었다.
나의 뉴욕에 대한 로망은 내 또래의 여자 아이들에게 꽤 영향을 주었던 케이블 채널, 온스타일에서 본 미국 드라마 가십걸에서 시작되었다. 뉴욕을 배경으로 하는 대표적인 작품으로 프렌즈나 SATC이 꼽히지만, 나에겐 가십걸 1시즌 만한 게 없었다.
처음 가십걸을 보고 뉴욕이라는 도시를 마음에 품은지 10년차,
여전히 로망을 간직하고 있던 2016년, 뉴욕에 처음 갔다.
서울의 한 프로젝트를 위해 달리던 시기였고, 서울에서 잘 하기 위해, 뉴욕의 이곳저곳을 둘러보는, 동료들과의 리서치 트립이었다.
당시 신기재였던 아시아나 A380을 타고, 혼자 비행기에서, 잠깐 잠들었을 때 말고 내내 설레며 좁은 비행기에서도 신이 났었다. 긴장하며 입국 심사를 받고, 능숙한 척 우버를 부르고(카카오택시조차 불러본 적이 없었는데!) 첼시의 한 에어비앤비 앞에 내렸던 순간은 여전히 생생하다. 햇살아래 나부끼는 성조기와 프라이드 플래그, 내가 뉴욕에 왔다는게 아직 실감이 나지 않던 두근두근하던 기분.
답사와 여행을 겸했던, 개인 시간이 꽤 있었던 일정이었는데,
답사지들과 응당 가봐야하는 랜드마크들을 탐방하는 한편, 나름대로 여행카페에서 보았던 액티비티들을 혼자 찾아 실행했다.
서클라인 크루즈도 타고, 유엔투어도 신청하고, 사회초년생에겐 큰 부담이었지만 결국에 질러 버렸던-헬기투어도 하고,
멧과 멧의 계단, 어퍼이스트사이드의 거리를 걸으며 가십걸을 소환하고.
미팅에서 만난 분이 알려주신, 당시 개장한지 얼마 안되었던 헌터스포인트 사우스파크에서 피크닉을 하면서 새삼 맨해튼에 반하고,
브루클린 (베드포드 애비뉴...였나 까지만 기억난다) 비앤비로 옮겨서, 훨씬 더 나아진 숙소환경과 생경한 풍경에 어색해 하면서,
또 프로스펙트파크에서 센트럴파크와는 다르게 감탄하며-이런 공원 곁에서 자란다면 꽤나 다른 성장을 하겠구나 생각하며- 여행을 마쳤다.
첫 뉴욕 치고는 꽤 길게, 여유로웠던 열흘의 일정을 마치고 돌아왔다. 뉴욕에서 받은 모든 것-리플릿은 물론이고 영수증까지-을 버리지 못하고, 첫 로망의 도시를 더 마음 깊이 품은 채로.
도시, 서울을 항상 일의 주제이자 인생의 관심으로 두면서
나의 도시 서울에 대해 깊어지는 한편,
여전히 뉴욕을 다시 갈 것이라는 마음이 항상 있었다. 마일리지를 모으는 신용카드를 쓰면서, 꼬박 꼬박 몇 년을 모아서 꼭 가능한 가장 높은 클래스의 티켓을 타고 뉴욕에 가야지.
2022년도의 뉴욕행은 (여러 우여곡절 끝에) 높은 클래스 티켓의 설렘 대신,
관심을 가져왔던 미국 동부의 아카이브들을 탐방하고 뉴욕 여행을 더하는 여행이었다.
약 2주간의, D.C와 매릴랜드, 뉴욕, 뉴저지의 아카이브/도서관을 탐방하고, 사이사이에 (6년전 스팟을 포함한) 뉴욕을 탐방하는 여행.
이번엔 여행 크루즈 대신에 이동을 겸하며 맨해튼을 감상하는 페리를 주구장창 타고,
공항에서 우버 대신에 에어트레인과 LIRR 조합으로 이동하고,
신상 전망대로 뉴욕을 바라보고,
이번에도 헬기투어를 하고. 달리기라는 취미가 살-짝 추가되어 센트럴파크와 윌리엄스버그도 조금 뛰어보고.
동료들과의 리서치 트립이었던 첫 여행과,
자료를 찾는 리서치 자체가 테마였던 두 번째 여행은,
이후의 뉴욕여행의 모든 기초가 되었다.
비단 여행의 눈 뿐만 아니라
도시를 보는 눈과,
자료를 보는 눈까지도.
2024년, 2025년 연달아 여름 뉴욕 여행을 가면서
사람들은 도대체 왜 또 계속 뉴욕을 가는지 궁금해했다.
세상에 탐험할 도시들이 얼마나 많은데 또, 또, 뉴욕이냐고.
가십걸에서 시작된 첫 로망이 끈질겨서 일수도 있고,
서울을 제외하고 계속 궁금하고 알고 싶은 유일한 도시여서 일수도 있고,
그렇다고 갈때마다 딱히 더 새로운 곳을 가보는 것도 아니었지만.
익숙해지면서도 여전히 낯설게 사랑하는 도시에 대한 설렘과 호기심을 붙잡고 싶었다.

세 번째 뉴욕을 갔다 왔을 때였나,
엄마는 내가 뉴욕만 가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면서도,
또 그렇게 네가 좋아하는 그 도시가 어떤지 엄마도 궁금하다고 얘기하곤 했었다.
무슨 꿀단지라도 있냐고. 꿀단지는 커녕 가서 서울에서 겨우 모은 꿀도 탈탈 털려 오는데.
그럼 2027년 여름휴가로 한번 도전해볼까 했던 여행은 여차저차의 이유로 급 2026년 가을 뉴욕행이 되었다.
반년 동안 준비할 시간이 있었지만 나의 게으름 (어쩌면 뉴욕에 익숙해졌음에 대한 믿음과) 때문에 ESTA와 여권만 챙긴채로,
훌쩍 14시간 비행 후 지구 반대편 뉴욕에 도착했다.
엄마가 뉴욕을 좋아할 거란 데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엄마와 뉴욕여행은 철저히 나의 세계관-에 기반해서 이뤄졌다.
여행객들이 가는 주요 랜드마크들을 챙겨가면서도,
페리를 자주 이용하는 이동 방식이나,
엄마가 지하철을 싫어한 덕분에 더 길어진 도보 경로,
공원을 최대한 끼워 넣는 루트.
매 여행 의식처럼 탔던 헬기투어도 함께하는.
그렇게 볼거리가 있는 곳이 아닌데도 첫 여행에 너무 반해버려서, 잠깐 머물더라도 찍고 가는 거버너스 아일랜드,
나도 10년만에 신청한 유엔투어,
전망대-페리-헬기-트램-… 뉴욕을 여러 시점에서 보기 위한 다양한 수단들의 동원,
하루 2만 5천보는 너끈하게 걷는 강행군(!)과 서로의 체력을 감탄하며(나는 아침 달리기도 빼먹지 않았다),
하나라도 더 보고, 더 감동하고, 기뻐하는 여행.
엄마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뉴욕을 좋아했다.
첫 날부터 느꼈다. 아니다, 서울에서도 어렴풋이 느껴왔던 것을 확신했다. 내가 서울을 탐색하고, 뉴욕을 좋아하고, 도시를 읽겠다고 하는 건, 다 엄마를 통해 온 거구나.
여행 경로는 내가 이끄는 대로 이어졌지만, 그 사이에서 보는 것은 오히려 엄마에게 이끌릴 때도 많았다.
하이라인에서는 서울로7017을 비교하며, 여기가 훨씬 안정감이 있고, 식물들과 건물 사이사이 녹아드는게 다르다고,
페리를 타면서 한강버스가 이거 벤치마킹 한거 아니니,
근데 뉴욕의 강은 훨씬 훨씬 다니는 배도 많고 물류 기능이 다른 것 같네,
(브루클린 네이비야드를 지나며) 물을 낀 도시라고 해도 뉴욕의 기능이 훨씬 복합적이네,
네가 왜 여기를 좋아하는지 너무 잘 알 것 같애.
사실 세계관을 얘기하기엔
나의 뉴욕조차도 그간 여행을 다 합쳐도 한참 짧고,
엄마가 나에게 일러준, 선물해준 엄마의 서울에 비하면 한참 얕고 얕지만,
나의 뉴욕을
엄마의 뉴욕으로 전달할 수 있었고,
그럼으로써 나의 서울과 엄마의 서울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으니까.
다음 뉴욕여행을 또 생각하는 한편으로,
나의 도시-사는 곳이자, 탐구의 대상이자, 일의 기반인- 서울에 대해서 더 복잡해진 마음은 어디로 가야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