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와 달리기
책 <아홉살 인생>에는 이런 문구가 있다. "아홉은 정말 묘한 숫자이다. 아홉을 쌓아 놓았기에 넉넉하고, 하나밖에 남지 않았기에 헛헛하다. 그 아홉이 지나면 또다시 새로운 출발을 해야 하기에 불안하기도 하다. 따지고 보면, 이건 모두 십진법의 숫자놀음에 지나지 않지만, (후략)"
20년도 더 전에 읽었던 이 책에서 저 십진법의 숫자놀음이라는 문구만 유난히 오래 남았다. 주인공이 누구였는지, 어떤 배경이었는지도 흐릿해지는 동안에. 자주, 어떤 눈금을 버텨야할 때마다 십진법의 숫자놀음을 생각했으니까. 다음 10이 될때까지, 안되면 다음 5가 될때까지 버텨보자, 30초만 더 해보자, 1분을 채워보자 등등.
달리기는 십진법의 숫자놀음과 친한 운동이다. 시간, 거리, 칼로리 세 계기판이 쉼없이 돌아가는 트레드밀에서의 달리기는 물론이고, 러닝 시계를 차고 달리다 보면 십진법(혹은 육십진법)과 가까워질 수밖에 없다. 러너들은 9.9km에서 멈추지 않는다(웬만하면). 10k를 채운다. 정확히 거리와 시간을 정해서 훈련을 할 때도 있지만, 나의 달리기는 대략의 목표 거리만 정하고 나간다. 10k를 뛰겠다고 정한 날에는, 눈금에 올라가는 시간과 거리를 흘긋흘긋 쳐다보며 목표한 거리를 채운다. 아무런 장비가 없이 뛴다면 목표 '거리'를 정하고, 성실(?)하게 실행할 수 있을까? 지루한 트레드밀을, 아무것도 보지도 듣지도 않으면서, 계기판 없이 버틸 수 있을까? 세개의 지표는 항상 언젠가는 10이나 60을 앞두고 있으니, 그 계기판을 보면서, 지금까지 지표를 연산해보고, 앞을 가늠해보고, 그러다보면 목표한 거리는 생각보다 빠르게 다다른다.
달리기를 시작한건 2017년 어느 여름이었다. 학교다닐 때 체육시간을 제외하고, 취미로, 주체적으로 달리기를 한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집에 있는 편한 옷 아무거나 줏어 입고, 신발도 슬립온을 신고, 아마 1.5km 정도 겨우 뛰었을 텐데 그 짜릿함과 쾌감이 좋아서 계속 달리기를 하게 되었다. 그러다 2018년에 처음 첫 10km 대회를 나가 보았고, 첫 하프는 2019년에 완주했다.
이때까지도 달리기는 그렇게 열정적으로 하진 않았다. 코로나 시기를 지나고, 본격적으로 대회가 재개되었던 2023년, 가을 하프마라톤에 접수하면서 여름부터 월 최소 100k를 뛰기 시작했다. 2024년 가을 첫 풀코스를 준비하면서 부터는 하프는 우습게(2023년 가을 하프만 해도 후반부에 다리 다 잠겨서 뛰었는데!), 30k, 35k도 뛸 수 있게 되었다.
객관적인 지표로 내가 잘 뛰는 건 아니다. 중상위권 정도? 풀코스 3:49, 하프 1:46, 10k 48분대. 뛰는 사람 중엔 중상위권이겠고, 뛰는 사람이자 연구하는 사람 중에(참 좁은 교집합이겠지만…..) 꽤 상위권일 수도 있겠다 생각한다.
사실 연구와 달리기라는 제목을 쓰기에,
내가 잘 달리는 것도 아니고,
연구를 한다기엔 이제 석사를 졸업했고,
하지만 아무렴 어떤가. 어쨌든 나는 무형의 지식을 다루고, 거기서 부가가치를 만들고, 달리기를 꾸준히 하는 것은 사실이니, 그런 관점에서 쓰는 스냅샷 같은 글이다.
이제 정신력이 체력에서 오는 거라는 건 어느 정도 공유되는 사실이다. (미생의 그 대사를 참 좋아한다. "이루고 싶은게 있다면 체력을 먼저 길러라." "'정신력'은 '체력'이란 외피의 보호 없이는 구호밖에 안 돼.")
운동이 뇌기능을 좋게한다는 것도, 알려진 사실이고.
내가 여기에 더 보탤 말은 크게 없다. 운동하고 뇌가 잘 돌아가는지는 모르겠지만, 정신력-체력의 관계는 확실히 느꼈다. 체력이 좋아지면, 육체가 고통을 견디는 역치가 높아지면, 그 인내력은, 몸에만 적용되는 게 아니라 감정과 정신력에도 같이 적용이 된다. 이제 웬만한 힘듦엔 그러려니-가 된 것도, 내가 타고나길 덤덤한 인간이어서가 아니라, 고통의 역치가 높아져서, 그 역치를 넘어가도 달리기라는 육체 자극이 넘게 해주니까.
이 글에서 쓰고 싶은 건 조금 다르게,
정량화되지 않은 연구의 과정을 버티는 데 달리기라는 운동의 정량지표-십진법의 숫자놀음에서 시작한-가 꽤나 유용하다는 거다.
농담처럼 얘기하곤 하는데,
웬만한 힘듦은, 짜증은, 매일의 10k를 뛰고 나면 대충 용해될 때도 있고, 기화되어 날아갈 때도 있고,
가끔 세게 오면 하프를 뛰면 해결되고,
하프로도 해결이 안될 땐 아 이번엔 좀 힘드네? 하지만 거기까진 잘 안가게 되었고,
하프 다음에도 뛸 거리는 아주 많으니까 해결이 안되어도 무너지지는 않는다.
하프로 해결이 안된날 조차도, 다음엔 30k 뛰면 좀 낫겠지, 하고 넘길 수가 있으니까.
달리기가 잘 맞는 덕분에,
웬만하면 아침에 10k를 뛴다. 여유가 없으면 5k라도 뛰고 하루를 시작한다.
매일하는 루틴이 되어 주는 힘도 있고,
근데 그게 해야해서 하는, 루틴을 나열하고 체크체크 하는 그런게 아니라,
뛰고 싶어서 뛰고, 뛰면 기분이 좋으니까 뛰고,
아 오늘은 좀 귀찮다(한달에 한번쯤?) 하더라도 시계의 스탯을 보면서 어느새 거리를 채우고 있을만큼 잘 맞는다.
거기에 매일의 하늘이 다르고, 풍경이 다르고, 달리면서 하는 생각도 다르니 재밌고,
무리 똑같이 굴러가는 일상 같아도, 나는 이 달리기는 다르게 붙잡고 간다고 하는 스스로에게 믿음도 생긴 것도 있다.
정량화 이야기로 돌아와서,
십진법의 숫자놀음은 생각보다 인간에게 각인이 되어 있어서, 어지간하면 마일리지를 더 채우게 되는 동인이 있다.
그건 매일의, 매번의 달리기 뿐만 아니라 자동으로 기록되는 덕분에 주간, 월간, 연간 지표를 보면서 채우게 된다.
정량화가 수행거리를 채워가는 한편으로,
오늘은 10k짜리 고통, 이번 건 좀 세서 하프짜리 고통, 이런 정량화가 머리속으로는, 마음으로는 가늠이 안되는 감정이 아니라 그걸 우습지만 정량화를 함으로써 훨씬 가볍게 만든다는 거다. 관념적이고 정성적인 것에 단위를 붙이고 정량화를 하는 것은, 이름을 붙이는 것이 인식에도 변화를 주는 것과도 닿는 이야기가 아닐까 하고.
이런 생각을 하다, 어느날 한 교수님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나의 달리기와 박사 진학 얘기가 스치듯 지나간 적이 있다.
박사에 들어가면, 3000k는 뛰겠다, 대략 그런 이야기였는데,
아 저는 1년에 2500k는 뛰어요,
저 석사논문 집중해서 쓰는 달엔 제일 많이-300k를 뛰었어요!
3000k로는 안되고, 10000k는 뛰어야 할 것 같아요. 어 근데, 그렇게 생각하면 박사 할만 한데요?라고 말했고,
그러고 나니까 뭔가 몇 년이 걸릴지, 해낼 수 있을지 없을지 알 수 없는 박사과정이라는 산이 정량화되어서 보였달까. 석사하는 동안 4000k는 뛰었으니, 박사는 그 3배 한다 하면 12000k 뛰면 될까, 모자라면 좀 더 뛰면 되지 않을까.
연구라는 건 내가 오늘 얼만큼 했다, 얼만큼 찾았다, 얼만큼 썼다-하기 참 어렵고,
오늘 내가 많이 한 것 같아도 내일은 다 지워야할 때도 있고,
찾을 수록 모르는 것이 나오고, 그래서 찾는 도파민과 번아웃이 한번에 오기도 하고,
글쓰기와 말하기엔 관계와 의식이 있고,
그러다 보면 내가 어디쯤 한걸까, 뭘 한걸까 헤매기가 쉽고, 지치기 쉽고, 침전되기 쉬운데,
거기에 달리기라는 해맑은 정량 지표는, 묵묵히 다치지만 않고 즐겁게만 하면 되니까.
다치지 않고, 재밌는 달리기를 계속하기 위해서 몸을 돌보고, 그렇게 기른 체력이 정신력을 키워주고, 저지선을 만들어주니까,
그러다보면 달리기를 하면서 연구도 조금씩은 나아가고 있다(고 믿는다).
물론 이 연구와 달리기의 관계는, 달리기를 내가 온전히 취미로, 대회를 나가도 완주를 목적으로 하고 기록이나 순위에 연연하지 않는 구간이라는 것또한 크겠지만.
내가 연구를 계속하는 데에, 달리기도 함께할 것이다.